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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 : 고바야시 야스오, 후나비키 다케오
옮긴이 : 유진우, 오상현
출판사 : 경당

3부 다원적 논리를 향하여
더블바인드 '마음을 사로잡는 논리 - 베이트슨과 정신생태학
사토 요시야키


3부 타이틀이
매력적이었다. 여는글의 주석자의 명쾌한 생각에 동감한다. 요약하면  
'세계는 항상 복잡했다. 따라서 이 복잡함을 복잡함 그대로 설명하는 논리가 발명되었다'(후나비키 다케오)

사람들은 보통 복잡한 세계를 단순하게 만들어 내려는 노력을 하는데, 사실 이런 작업으로 빠지는 것 없이 끌어안고 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혹 잘 정리된 이론이라도 검은백조처럼 예외가 발견되면 다시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복잡한 것을 그대로 설명한다고 해서 어지럽게 늘어놓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친절하게 차근차근 설명해준다'라는 정도로 생각하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3부 첫글은
시험볼 때, 특히 독해나 듣기평가를 할 때 궁금했었던 점을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며 시작하기에 여는 글부터 단숨에 읽어내렸다.
텍스트에, 그 관계에 대한 내 상상력을 더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했고, 틀린 답을 끌어내는 일이었다. 이런 경험으로 배제해 오던 '주변상황'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

시험이라는 정황은 현실 세계와는 참 많이 다르다. 세상은 정말 다양한 현상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적 행위들은 소통-커뮤니케이션-을 거쳐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하면 시험 또한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제한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한 필요성으로 이 현상중 일부만 사용한다. 

그렇다면 시험에서 사용하는/사용하지 않는 현상들은 어떤 기준으로 분리되는가?
이 글에서 주목하는 커뮤니케이션 레벨을 보면 이해가 쉽다.

1) 상호 개개의 항목 레벨 : 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에 대해 포커스를 둔 레벨
2) 개개 상황의 정황 레벨 : 제스춰/ 음색 /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 장소의 분위기등의 감정, 태도
3) 관계성 레벨 : 사랑, 투쟁등 그 관계에서의 감정이 쌓여온 히스토리와 배경

이 레벨 1) 개개 항목에 집중하는 것이. 대부분의 시험의 근간이 되는 방법이고, 보통 알려진 '과학적'인 연구의 기반이다. 이에는 '객관적'인 정보의 수집, 쪼개고 분석하여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아내고자 하는 방대한 작업들이 뒤따른다. 소위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이 물질의 구조에 대해 분석하고 개개에 대한 기능을 정의하는 것이라든지, 인문학자들이 행간행간을 소설이나 시를 분해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모든 것은 각각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이러한 파편들 대신 전체적인 레벨이 합쳐진 정황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한다. 진심으로 '축하해'라고 말하는 것과 건성으로 '축하해'라고 말하는 것은 1)의 '축하해'라는 단어에 2)의 정황이 얹혀지고 3)에 대한 이해가 전제로 깔려야 명확하게 구분 될 수 있는 것이다.
'축하'라는 단어는 보편적으로 긍정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반대 상황에 그 단어를 쓴다면? 그리고 그 하나의 단어 뿐만 아니라 다른 단어나 문장, 또는 태도로 확장해서 이런 것들이 1)의미적으로 알고 있는 부분과 자꾸 충돌이 나면?
(책에서는 자식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괴로워하며 거짓말로 '사랑해'라고 이야기 하는 정황을 든다.)
베이트슨은 이러한 레벨간의 괴리가 정신분열 자들의 커뮤니케이션행동의 특징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이런 모순적 상황을 '더블 바인드'라고 말한다.

이 어긋난 커뮤니케이션 레벨은 정실분열환자의 전체 상황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본질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신경불안증에 단순히 진정제의 약물조취나 단순히 환자 자체에 대한 치료 뿐 아니라 그 환자의 가족, 친구 등의 '사회적 시스템'도 같이 조율이 필요하다. 즉,제한된 목표를 (환자의 신경불안증세 치료)를 단순한 답하나로(약물 치료 등) 고치고자 하는 태도로는 근원적 치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글 말미에 밝힌대로 '목표 설정과 그곳에 이르는 지름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식상태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것이 진화의 섭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명확한 목적안에서 그곳에 이르는 최선의 방법을 유일한 답으로만 추구하던 우리에게 더 풍부한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너무 한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라고 이야기 하는 목소리가 시원하다. 더 나아가 개별적, 구체적인 레벨로 부터 상위 레벨로 올라가면서 숲을 보는 눈을 키우고 그것을 관리할 능력을 키우는 것. 이것이 지를 知識에서 知慧로 바꾸는 태도이다.

그러기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가 보다.



p.s.
여기에서 컨텍스트의 포함관계에 대한 레벨도 소개했는데 흥미로운 내용이라 곁들인다.
(문맥상 위치를 고민하다 내린 결정. ^^;)

'I`m nothing to say but lie'라고 했을 때
이 사람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 지는 말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리의 어긋남으로 판명하기 힘들다.  이것을 20c 러셀&화이트가 말의 등급을 설정함으로서 깔끔하게 정리하였는데 '자 지금부터 거짓말 시작' 이라는 선언을 하는 부분을 상위그룹으로 하고, 이 선언 이하의 이야기들을 이 말에 따르는, 즉 이말의 범주에 속하는 항목으로 두면 논리의 혼잡을 피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전산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객체지향의 class-object의 관계로 생각해 보자.)

(글. 서지혜 harah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