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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철학 아카데미, 조광제
출판사 : 동녘

이 책을 엮은 철학아카데미는
여러 연극, 영화, 미술, 건축등의 문화의 각 형태들을 '철학'이라는 근원속에서 탐구하고자 하는 '시민철학운동'이라는 재미일을 하는 그룹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저자로 하여 엮어내었는데 그 중 인상 깊었던 부분과 이에 대한 느낌을 적어본다..
 아직 휘뚜루 엮어낼 재주가 없는지라 이리 조각조각 적는다.

<예술의 왜곡된 사용>
예술은 하나의 사회의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교양있는 상류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을 가르는 잣대로서 사용되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러한 '계급'구조는 옛 그리스에서 육체적인 노동과 실용적인 아름다움은 노예에게 걸맞는 것이고, 정신적인 노동-사유,아름다움 자체가 그 목적이 되는 것은 평민이나 귀족에게 맞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에서 유래됬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오늘날엔 언제 어디서나 대중은 예술을 접할수도, 직접 만들 수 수도 있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다니면서, 마을 극장에 참여하며, 또 예술 치료등에 참여하며 예술을 소비할 뿐 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산해 낸다.

따라서 무언가 '계급' - 그것이 지식이든, 재력이든- 을 상하로 나누고자 하는 사람은 더욱 더 복잡하고 난해한 예술을 이해하려고 경주하는 것 같다. 예술가는 더 복잡해지고 화려해져보이는 기술, 난해함과 충격, 기존에 대한 해체 속으로 자신들을 밀어넣어 세상과 경계 짓거나 그 세상을 관망하고 표현하려고 한다. 이해하기 힘든 퍼포먼스, 추상적이고 실험적인 회화, 오브제들 , 복잡한 알고리즘등을 이용한 '어려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고'급'한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매체>
예술은 표현함으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매체'가 예술가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매체가 나오면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영감을 이를 통해 어떤식으로 표현 할 수 있을지 연구하고 적용해 가면서 그 과정과 결과로 문화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이에 대해 이러한 '매체'의 변화에 따라 어떤 흐름들이 나타났는지를 조명해 주는 캔버스,사진,디지털도구등 다양한 매체는 그 시대가 요구하던 발명품이요, 기술과 과학이 필요에 의해 발전하고 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매체들을 예술가/산업가/과학자들의의 선구적인 시도를 거쳐 활용방법 찾아간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사실 사유,기술,과학,예술은 뗄 수 없는 것이고, 이 조합은 시대라는 복잡하고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나간다.

맥루언은 전자매체는 인간의 확장이라고 했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의 한 글에서도 이런 표현을 만난적이 있다. 현대에는 더욱더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고, 또한 공유되고 확장되는 지식과 감각으로 한 인간은 아주 '넓은' 삶을 살게 된다. 감각할 수 있는 범위가 인터넷을 통해서 확장되고 위키피디아를 통해서 지식이 공유된다. 센서를 통해 입력받은 것을 우리는 가상공간에서 적용시킬 수도 있다.

<미술가, 과학자>
눈길을 끄는 '미술과 과학은 영원한 평행선인가'라는 글이다. 왜 답이 나와있는 제목을 제시했을지 궁금했다. 풀이가 시원했다. 특히 맘에 든 내용은 썩 대우가 좋지 않았던 미술가와 과학자 '역할'을 하던 중세 지식인로 부터 '미술가의 반과학적 이미지의 기원을 밝히는 점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네가지 체액에 기본해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뛰어난 사람들의 기질을 '멜랑콜릭것으로 연결시키는 바람에 중세의 신봉자들이 그래서 웬지 '천재적'인 것은 남과 다른 음울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합리화를 인식시켰다는 것이다. 

(글. 서지혜 - harah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