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계간 '통인미술' 여름호 특별기획 섹션에 실린 전병삼의 칼럼으로 뉴미디어 아트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간략한 소개 글입니다.
뉴미디어 아트? 그거 백남준이 하는 거 아닌가요?
글, 전병삼
도예나 고미술과 같은 전통예술을 주로 소개하는 ‘통인미술’에서 뉴미디어 아트(New Media Art)를 논한다는 것이 어째 좀 어색할 수도 있겠다. 판소리를 들으러 온 관객 앞에서 듣도 보도 못한 전자음악의 생경함을 꺼내어 놓는 느낌이랄까? 글 부탁을 받고도 잠시 망설였던 건 전통과 새것의 첫만남이 자아내는 어쩌면 그 서먹하고도 묘한 관계가 먼저 떠올라서 일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뉴미디어 아트를 처음 접하거나 낯설어 하는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짧은 소개 글 정도로 정리를 해볼까 한다.
자 그럼, 뉴미디어 아트가 대체 무엇인지부터 좀 알아보자. 재작년 미술관에서 만난 혹자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 그거. 백남준이 하는 거 아닌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수많은 모니터와 영상을 활용해 그가 실험했던 예술작품들은 뉴미디어 아트의 범주에 속해 있는 ‘비디오 아트’로 분류되지만, 그것이 뉴미디어 아트의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통회화나 조각과 같은 ‘올드미디어 아트’와는 달리, ‘뉴미디어 아트’라 하면 흔히 새로운 정보 매체기술 특히 컴퓨터/인터넷이나 공학기술 등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모든 창작활동을 통틀어 이야기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영역으로 간주되던 예술과 과학이 서로 만나 다양하게 조합되어 생산되는 창조적 활동을 크게 아우르는 말 정도로 뉴미디어아트를 받아들이면 이해가 좀 쉬울 것 같다. 가깝게는 디지털 형식으로 컴퓨터를 통해 구현되는 Digital Art부터, 전자공학적 지식을 작업에 활용하는 Electronic Art, 관객의 참여가 최종 결과물로 이어지는 Interactive Art, 유전자조작과 DNA복제 같은 생명공학 분야가 작품에 차용되는 Bio Art까지, 뉴미디어 아트라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어휘적 관점에서, ‘뉴미디어’가 갖고 있는 다소 애매한 의미와 그것을 구분하는 시대적 잣대가 유동적인 탓에, ‘뉴미디어 아트’라는 단어를 쓰는데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소비경제와 직접적 연관관계를 가진 첨단 과학산업이 사회시스템과 문화를 컨트롤 하고, 옛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높게 평가하는 요즘 한국의 세태는 뉴미디어 아트를 마치 선동구호마냥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뉴미디어 아트에 주목하는 걸까? 그것이 가진 근사한 어감이나 새로움을 숭배하는 작금의 사회적 현상에 그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것이 담아내고자 하는 쌍방향성(interactivity)과 경계의 파괴/재조합에서 오는 다원주의적 확장이 지금 시대의 큰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햄버거에 불고기가 들어가고 피자에 김치가 올라가면서 국가적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레 허물어지고, Skype과 같은 P2P 인터넷 전화통신 네트워크를 통한 개인간 글로벌 네트워크 만들기가 한창인 요즈음, 뉴미디어 아트는 어쩌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우리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 컴퓨터 속 픽셀들을 따라 매일 인터넷을 헤엄치고, 멀리 사는 친구와 온라인 게임에서 만나며,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로 UCC(User Created Contents)를 창조해내는 그야말로 뉴미디어 라이프가 우리 곁에 있다.
이렇게 과학기술의 진보는 항상 예술의 패러다임을 바꿔왔고, 비디오에서 컴퓨터, 그리고 원거리 네트워크기술에 이르는 뉴미디어의 발전은 우리의 문화와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면서 새로운 형식의 작품과 기존에 없던 표현 양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2000년 바이오 아트의 선구자 Eduardo Kac가 프랑스에서 처음 발표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GFP Bunny’ (해파리의 형광 유전자를 추출해 토끼의 수정란에 주입해 만든 형광토끼)는 일단 극단적인 경우라 하더라도, 몰입형 가상현실(Immersive Virtual Reality)의 성공작 중 하나로 꼽히는 Char Davis의 Osmose (1995)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관객의 호흡과 몸의 움직임으로 가상의 3D 공간을 탐험하는 작품), 혹은 검은색 캔버스에 뚫린 작은 구멍들로부터 새어 나오는 다양한 바람패턴을 통해 눈이 아닌 손의 감촉으로 그림을 감상하는 Dmitry Strakovsky의 (Re)defining Borders #3 (2006) 등 말로만 들어도 흥미진진한 작품들이 뉴미디어 아트라는 울타리 안에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 이제 마무리를 짓자. 지금부턴 ‘뉴미디어 아트는 백남준의 작품이야.’ 라고 말하는 대신, ‘예술이 공학과 만나 만들어낸 모든 창의적 결과물’이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세부장르들도 한번쯤은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자. 예술 이론가가 아닌 이상, 더 깊이 알 필요도 없이 이제는 보고, 참여하고, 즐기는 일만 남았다.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것은 만나고 흘러가며 역사를 이룬다. 오래된 것은 버리고 새것만 취하거나 새것을 배타하고 기존의 것만을 고수하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시대를 보는 눈을 좀 더 크게 뜨면, 흑과 백 사이의 무수히 많은 색상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자 이제 낯설고 부담스러웠던 뉴미디어아트의 세계로 한걸음 먼저 다가서 보자. 이제부터 당신도 New Med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