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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WEB  2012년 1월호 인터뷰 기사 : 1인 5역, 소통과 융합의 주역 KoIAN 전병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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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웹] 1인 5역, 소통과 융합의 주역 KoIAN 전병삼 대표



 

 

전병삼 대표는 인터뷰 진행을 위해 연락하는 며칠 동안에도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인터뷰 당일, 이틀 만에 집에 들어갔다가 씻고 바로 나왔다는 그와 마주했다. 피곤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오히려 일이 즐거워 미칠 지경’이라고 웃었다. 일이 수단이 아닌 본질이 될 때, 그것은 곧 자신을 규정하는 삶 전체가 된다. 그의 일은 사람, 취미, 여가를 포괄한다. 모든 것이 그 안에 있어 에너지 소모 없이 오히려 응집된다. 그에게 일은 삶의 가치를 담는 플랫폼이자, 세상과 자신을 잇는 통로, 더 큰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네트워크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과 인간의 소통, 그 중 의미 있는 ‘깊은 소통’도 그 안에 담겨 있다.

 

인간의 영원화 화두, 소통의 재발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원칙을 거스를 때, 인간은 불안정한 미완의 존재로 남게 된다. 서로 부대끼고 감정을 통할 때 비로소 자신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전병삼 대표는 어린 시절, 자신 안에 갇혀 있던 시간을 떠올렸다. 예민하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소외된 아이. 건축가인 아버지와 의상실을 운영하는 어머니 덕에 철사나 헝겊 조각을 갖고 놀았고, 그것으로 곧잘 뭔가를 만들곤 했다. 이것이 동네에 소문나면서 친구도 생기고, 자신을 극복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그 짜릿한 순간을 그는 ‘숙명’이라고 회상한다. 이후 창작은 그와 세상을 잇는 매개가 됐다. 자신이 창작을 통해 치유된 것처럼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바람도 일었다. 현재 그와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은 이때 생성한 것이다,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미디어를 활용해 사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 지속 가능한 그의 미션이라고. 그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미디어 기술,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미국 유학을 결심한 것도 같은 이유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텔레마틱 드럼 서클(Telem atric Drum Circle, www.telematicdrumcircle.net)’은 당시 모든 고민과 열정, 철학이 담겨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소통의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밖에서 신 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사람들이 원을 둘러 손뼉 치고 병에 돌을 넣어 흔들면서 춤추고 있었다. 흥겨운 자리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춤추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리듬과 음악에 빠져 그 친구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사운드와 액션만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었다. 음악과 춤이 눈빛 교환만으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순간, 큰 임팩트가 있었다. 그동안 쌓인 소통의 답답함이 단숨에 날아갔다. 이것은 ‘드럼 서클’이라고 연주가 목적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나 비트를 즐기면서 함께 화합하고 소통하는 데 목적을 둔 레크리에이션 게임이었다. 그는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드럼 서클에 참여해 소통하고 그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혼자서 작품 구상을 시작했고, 기술적으로 완성하는 데 2년 반을 소요했다. 인터넷과 원거리 통신, 로봇기술을 활용한 작품은 누구나 사이트에 들어와 원하는 악기를 연주하면서 대화하고 즐길 수 있는 형태로 구현했다. 이 작품은 2007년 9월 오픈 후, 12번의 전시와 59개국 30만 명이 실제 사이트에 회원 가입해서 연주한 기록을 남겼다.


 

타이밍도 능력! 가능성에 배팅하다


텔레마틱 드럼 서클 작업 후 전 대표는 협업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혼자서는 잔걸음밖에 걸을 수 없지만, 함께하면 큰 걸음으로 의미 있는 일을 더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박사 과정을 한 학기 남겨둔 2010년 초, 그는 모든 것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8년간의 긴 유학생활과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 받을 기회를 내려놓은 순간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의미 있는 걸음을 걸을 수 있는 타이밍이 왔다는 걸 직감했다. 
코이안은 그가 그린 가능성의 밑그림이자 하나의 작품이다. 지난 2년간 그는 코이안에 매달렸다. 혹자는 이를 두고 작업은 안 하고 비즈니스만 한다고 폄하하는데, 그의 생각은 좀 다르다. 전 대표는 “지금 하는 모든 일은 비즈니스가 아니다. 전에 했던 작업보다 조금 더 큰 작품을 한다는 개념에 불과하다. 작품이 꼭 만들고 색칠하고 설치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약간 모양과 콘셉트가 다른 작품일 뿐”이라면서 “출근하고 직원과 회의하는 일도 나에게는 일종의 행위예술”이라고 피력했다. 현재의 모습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중이라고 강조한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배울 것도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작가 전병삼으로 남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외인구단 ‘코이안’ 그리고 미래
코이안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 미디어를 활용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하는 국내 유일한 사회적 기업이다. 기업 내 일정 비율은 취업 취약계층, 장애인이 포함돼 있고, 오랫동안 근무할 수 없었던 아티스트도 있다. 어떻게 보면 소외계층이 모여 있다. 한 마디로 외인구단이다. 전 대표의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의 소외된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는 미국 유학 전 국내 최초 장애여성극단 ‘끼판’에서 시각예술 감독, 단원으로 2년 정도 일한 경험도 있다. 2004년부터는 해외에서 1~2년에 한 번씩 장애를 주제로 미디어 아트 전시를 열었다. 그는 “장애인 차별같은 사회적문제는 계속되고 있지만, 캠페인이나 시위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 이를 해결할 대안은 ‘문화’”라고 말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한 컷의 메시지가 파급력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코이안은 2010년 로봇난타를 기획했고 2011년 로봇타타와 뮤직로봇(www. robotata.com)이라는 한 시간짜리 어린이용 로봇음악극을 만들었다. 스토리와 음악, 인터랙티브 게임, 로봇 기술을 총망라한 작품이다. 무대에 사람 없이 로봇과 영상, 게임만으로 대극장용 공연을 한 사례는 최초라고. 그 밖에도 코이안은 전시, 공연, 출판, 학술행사, 소프트웨어 개발, 디자인, 멀티터치 키오스크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결국 코이안도 전병삼 대표와 같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 그는 그 키워드를 ‘사이보그’로 정했다. 사이보그는 인간과 기계가 융합된 결과물이다. 사람도 기계도 아닌 존재, 성차별, 장애인 차별, 계급구조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를 의미한다. 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규정하고 표현하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인간의 행복과 근본적인 고민을 위해 뛰는 그의 행보가 무풍의 회색지대를 지나 빛을 향해 가고 있다.

 

전병삼 대표가 이어주는 다음 호 릴레이 주자는 누구?
우직하게 반평생 한우물을 판 사람이다. 해당 분야의 권위자이면서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융합의  길을 모색하는 진정한 석학이다. 
깊이 있는 성찰과 경험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 w.e.b. 1월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글 박수연 기자 pksyn@websmedia.co.kr
월간 웹 vol.145 목차보기 







  


등록일 : 2012-01-05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