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 은하계 - 활자 인간의 형성
저자 | 마셜 맥루한 · 역자 | 임상원 · 출판사 |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 요컨태 과학은 감각의 분리에서 출발하고, 바로 이것이 예술과 과학간의 대립적 관계의 근원이라는 것을 말한다. 예술가는 감각의 고립이라는 단순한 길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세계에서, 감각의 통합 및 상호작용을 유지하고 회복하기 위해 투쟁해 왔다." - 책 본문중
“남부 이탈리아의 조형적이고 청각-촉각적인 세계로부터, 구텐베르크적 환경에서 모든 것을 분절하여 인지하는 분절자의 선형적 사고가 낳는 고민에 대한 해답이 나왔다." - 책 본문중
‘구텐베르크 은하계’ 읽기는 과학과 예술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작업들이 전개되고 있는 시기에, 특히 뉴미디어와 관련된 작업에 배경사상으로 종종 등장하는 ‘마셜 맥루한’에 대한 원전 탐구격으로 시작되었다.
마셜 맥루한은 이 책을 통해 세계를 보는 ‘패러다임의 역사’관을 보여준다. 오감에 의해 세계를 만나던 시대에서 구텐베르크에 의해 활자가 발명/보급되면서 시각위주로 개편된 세계관이 어떤 영향들을 미쳐왔는지를 주로 이야기하고, 그리고 왜 인간이 이러한 사고의 틀에 다시 회귀하고 있는지를 살짝 언급한다. (추후의 저작 ‘미디어의 이해’에 대한 연구방향의 간접적 암시라고 생각한다.)
인상 깊었던 흐름을 ‘지식’이 어느 매체에 수용되느냐에 대한 관점으로 간략히 정리해 보자면,
‘지식을 담아내는 그릇’이 인간이었던 시절, 오감을 이용한(작가가 청각-촉각이라고 부르는) 정보의 수용을 통해서 성경, 무용담, 전설, 또는 자연관찰 정보들이 전해졌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영위하는 아프리카의 부족에서부터 그 당시 문명화 된 도시국가들에게 이르기까지 이러한 전달체계는 같은 것이었다. 책은 그러한 전달의 보조도구 개념으로 필사로 쓰여졌고, 이러한 오감적인 전달을 위해서 ‘소리내어 읽기’를 염두에 둔 구어적 요소, 비유를 중첩적으로 겹쳐져 상징을 만들어내는 삽화들이 만들어졌다. ‘개인’은 독립적인 의미가 아닌 그 시스템을 이루는 자연적인 구성요소로 받아들여졌다. ‘모인’ 사람들은 더 큰 정보구조를 형성했다. 조각보를 기우듯이 사람들은 하나의 큰 이름 아래자신의 노력의 결과들을 모았고, 그 대표성에는 의의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그릇의 중점이 ‘인간’에서 다른 매체로 옮겨 갈 수 있게 된 것은 인쇄가 널리 보급되면서이다. 활자화를 하려면 정형화 과정이 필요하다. 다양했던 발음과 문법은 교통정리되서 가급적 효율적인 ‘찍어내기’가 이루어지도록 되었다. 접하는 정보가 많아지면서 이는 ‘시각’을 강조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틀로의 구조적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마치 로마가 그 길 위에서 파피루스에 얹힌 체계화된 알파벳들로서 세계를 정복했듯 정형화된 사고와 매체를 통해 기계가 발달하고 무역이 활발히 진행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로 정형화 될 수 없는 부분들 – 예술과 종교는 ‘논리적’사고와 분리되어 갔다. 철학과 과학은 이러한 정형화로서 사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추상화에 대한 믿음’에 따라 단순화된 공식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하나를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정리된다. 생산 ‘주체’로서의 개인이 그 저장소와 분리되면서 이런 누가 그러한 정보를 생산했느냐에 따라 작가의 개념, 즉 ‘사유’의 주체가 강조되었다. 사유하는 ‘나’에 대한 존재의 의미가 커지면서 ‘사람’을 향한 권위를 높이는 인본주의가 꽃피우게 된다. 내셔널리즘은 개인이 원하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어디까지나 ‘국가’라는 법이라는 이상화된 규칙과 규범으로 둘러쌓인 체재 안에서 가능한 것으로 구텐베르크의 발명이 낳은 사람들의 변화에 대해 가장 이상적으로 부합되는 모습으로 대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기승전결의 선형구조가 아니라는 점이 낯설게 다가왔다.
주제는 명확하고 단순하다. 본론은 방대하다.
내용의 깊고 방대한 전개로 다양한 관점에서의 '읽기'가 이루어 질 수 있는 다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포인트로 정리를 해 나가야 할지 접근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서론에서부터 제기된 이 주제는 마치 반복적인 기법으로 덧칠을 해 나가듯 지속적으로 다방면의 관점에 의해 뒷받침된다. 붓칠이 모여서 하나의 그림을 형상하듯 점층적으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다가간다. 다른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었던 근-현대에 이루어진 많은 ‘상황’들을 일관적인 관점으로 통합해서 해석해 낸다는 점이 그의 유명세와 권위의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물론 ‘금과옥조’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사실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나 관점은 것은 미와 함께 종교적인 부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현상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자체도 결국 정형화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융합에 대한 필요와 활동이 활발해지는 요즘. 이 책을 통해 ‘정형화 될 수 없었던’ 문화-예술분야, 과학과 일반 상업활동과 분리되어 왔던 세계가 왜 다시 만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이유에 대한 하나의 근거를 만나볼 수 있었다는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글. KoIAN 서지혜, harahan@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