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곤 교수는 서울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츠쿠바대학 예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현재 단국대학교 예술학부 서양화과 교수로 미디어 아트 이론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 외에도 작품, 전시기획, 비평, 학술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으며, 저서에는 <디지털화 영상과 가상공간>, <영상예술>, <영상기계와 예술> 등이 있습니다.

 

본 인터뷰는 미디어 아트에 대한 관심과 발전 방향, 가시화를 통한 예술과 과학, 학문간 융합 교육에 대한 생각 등을 중심으로 2009. 07. 20. 이원곤 교수님 연구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원곤 교수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이 인터뷰를 보실 많은 분들을 위해 본인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75년도에 입학해서, 약 10년정도는 미술학도로서 계속 공부를 해왔고, 그러다가 1984년을 경계로  비디오 아트 쪽으로 전공을 약간 바꿨고요, 초기에는 80년대 후반에는 제가 한국에서는 비디오 아티스트로 통했더랬습니다. 그래도 몇 명 안되는 그 비디오 아티스트 중의 한 명으로서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작품도 발표하고 그러다 당시로서는 국내 환경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기간동안 공부 할 생각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됐고, 거기 가있는 동안에는내가 배웠던 미술사라는 지식이 굉장히 편협한 것이었다는 것이었다는데 놀랐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제가 필요한 책을 찾는데, 옆에 제가 평소에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를 써놓은 책들이 많았는지... 그래서 자세히 봤더니 우리나라에는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에 특히 러시아 구성주의등 유행에 관련된 미술운동이 전혀 소개가 안되고 있었었어요. 그리고 또 약간 시기적으로 늦은 감도 있고. 당시로서는 백남준만 하더라도 해외에서는 상당히 많은 평가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잣대가 없었고, 그 사람을 소화해가지고 말을 전달해줄 전달자조차도 별로 없었던 시대라 그런 점이 많이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결락되있다고 많이 느꼈어요. 제가 배운 그 미술사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프랑스와 뉴욕의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라인 속에서만 공부를 해왔구나 라는 것을 느꼈고, 비디오 아트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문명으로 그것을 읽는다는게 굉장히 한계가 있다. 그것이 혹은 미술의 확장이다. 뭐 이런 얘기를 자꾸 들었는데, 결국에 이 미술의 확장이라고 하는 것은 쉬운 말로 이렇게 설명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는 것을 비로소 배경이 달리 느껴지면서 알게된거예요. 그래서 한 일년만에 그냥 실기를 공부하겠다던 생각에서 이론을 공부하겠다고 바꿨어요. 실기과정에 입학해놓고도 다시 취소를 해 이론과정으로 입학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어요. 사실 일본에서 이론 공부를 한다는 것은 프랑스식의 철학적인 또는 큰 것보다 어떻게 보면 아주 좁은 분야 하나를 결정해가지고 그 분야에 아주 깊이 파는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본에서는 주로 학문을 하는 풍토가 일단 스페셜리스트를 하는거죠. 도서관에 굉장히 많은 책들이 쭉 나열되어 있으면 그 많은 책들, 그 나열되어있는 책들 사이에서 빈자리가 그게 바로 자기 전공이에요. 그 빈자리에 자기 책을 하나 탁 갖다 꽂는 거 이게 바로 학문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사실 일본에서 공부를 하려면 그런 식으로 해야하는데, 한국에 돌아갈 것을 생각해보니 한국에서는 그런 아주 좁고 깊은 전공서적을 한 권 들고 와가지고 한국에 있는 한국어로 된 서가에 책을 딱 꽂았을 때 그 책이 그대로 서 있겠는가 아마 금방 넘어져버릴꺼다 주변에 주변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스페셜리스트가 되기보다 좀 더 제너럴 한 쪽 학문을 파야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됐었죠. 그때 쓰게된 책이 영상기계와 예술이란 책입니다. 사진, 영화, 뭐 컴퓨터그래픽, 인공생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 개론서 비슷한 그런 책이었죠. 그것을 쓰는 데 한 2년 걸렸습니다. 이 책이 아마 한국에 돌아와가지고 활동하는데 하나의 제 영역이나 발언할 수 있는 무대라던가 그런 스펙을 거의 결정했다고 보고요. 제 생각에는 그게 정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좁은 분야를 연구했더라면 한국 들어와가지고 할 일이 별로 없었을 거예요. 지금은 단국대학교 서양학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기초조형학회의 부회장 및 한국영상학회의 회장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회화를 하시다가 미디어 아트로 관심이 확장하게 되신 것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인가요?


저는 원래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졸업하고 지금까지 추상화를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관념론적인 그런 부분에 빠지기 보다는 실질적인 어떤 세계, 특히 이미지를 다루는데에만 관심을 가졌었고, 이미지 공학이라고 해야하나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변형시키고 그런 부분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졌더랬습니다. 대학교 때의 제 작품을 보더라도 확실히 그런 경향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한 편으로는 기계와, 기계 문명과 인간이라는 주제에 약간 탐닉한 적도 있었고요. 그렇게 그 때 당시에 먼 나라의 하나의 약간 SF 같은 수준으로 컴퓨터가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런 것을 대신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풍문으로 들은 바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남준 같은 사람의 활동을 책으로도 본 적이 있고, 하지만 제가 캔버스 위에서 하는 작업은 특별히 테크닉을 사용한다던가 하는 그런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계속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컴퓨터 그래픽을 보고 나니까 아 이게 내가 하고 있던 이미지 가공의 문제, 변형, 합성 이런 문제를 거의 다 여기서 해결할 수가 있구나하는 사실을 그 때 처음으로 알게 된 거였어요.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그 쪽으로 옮겨가버렸죠. 이것을 꼭 캔버스에 그리지 않아도 될거고, 천에 그려도 되는거고, 종이에 프린트를 해도 되는 거기 때문에 거기로 옮겨오는데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처음은 그런 관심에서 시작했었죠.


 

- 현재 미디어 아트에는 어떤 주류들이 흘러가고 있고, 주목해야 되는 것은 어떤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어느새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미디어 아트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미디어 아트와 관련된 주변 상황을 점검해보자면. 예전에 파리의 개선문에 올라가 주변을 둘러본 적이 있었어요.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길이 12방으로 길이 뻗어나가있어요. 모든 길에서 개선문이 저 편에 보이는거죠. 반대편 쪽에. 참 이게 대단하다. 이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모든 길이 다 모이는구나.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길에서 정면에 개선문이 보여요. 지금 예술 파트에서 보자면 정면에 미디어 아트가 보입니다. 기술 부분에서 보더라도 미디어 아트가 눈에 보이고요. 산업에서 보더라도 미디어 아트가 저 쪽 편에 보입니다. 이쪽 근경은 어떨지 몰라도 저쪽 원경에는 미디어 아트가 있어요. 철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문학도 그렇고. 사실은 이 미디어 아트가 개선문정도쯤 되는 네거리 한 가운데 지금 내팽겨쳐져있는,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생각이 되요. 모든 영역과 길이 통해있고. 서로 선이 닿아있고, 그런 과정에 있어가지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걸 통해서 어떤 새로운 길을 찾고자 애쓰고, 다시 이내 탈출구 또는 확장의 어떤 그런 방법을 찾을려고 하는 그런 지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은 굉장히 애매모호한 것이죠. 여기는 산업적인 전망도, 기대가 걸려져있고 인문학에도 탈출구, 예술의 새로운 확장, 또는 기술의 가시화, 과학의 비전, 인문학의 미래, 철학의 미래등도 다 걸려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대학에 가서 활동을 해보면 확실히 통섭, 다학제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일수록 미디어 아트에 자꾸 관심을 가지고 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래서 이게 하나의 단순히 예술의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미디어 문화라고 하는(미디어 아트라는 말을 붙이면 사실 능력을 제한하게 되니까) 미디어 문화라고 하는 부분으로 능력 확장을 시켜 총체적인 인간의 지성이라던가 미디어 문화의 비전을 탐구하는 무대로 삼아야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영역들은 역시 과거의 인문학에서 또는 철학에서 품어왔던 문제들이 미디어 아트를 통해서 풀리는가 하는 영역에 있어요. 예를 들면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은 신이 중심이었던 시대에서 인간이 중심이 된 시대로 옮겨왔는데 이제 기계가 중심인 시대로 가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결국 인간이 중심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가장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인문학자들, 철학자들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죠. 어떻게 보면은 이제 일부분에서 유물론적인 사고방식과 싸우게 되는 것이 되는데, 그 이전부터라도 그런 얘기는 많이 있어왔습니다. 예를 들어서, 기술조종론주의, 사고방식, 어떤 미디어의 구조가 사람의 사고방식을 갖다가 결정짓는다는, 어떻게 보면 위기감이죠. 인간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정신적인 회개를 통해가지고 자기의 비전을 열 수 있다. 이런 희망을 자꾸자꾸 제한하고 이제 점점 더 기계에 의해서 미디어 환경이 내 사고방식과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 과연 인간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고요.



- KoIAN에서 이번에 기계가 꾸는 꿈이라는 생성예술 관련 전시 및 심포지움을 진행 했습니다. 기계가 창발시키는, 사람들이 작품이라고 인식하는 예술적 표현 양식들을 보면서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게 이번 저희의 심포지움과 전시의 목적이었는데, 참여하시면서 이런 의미들을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지난번 심포지움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키워드가 ‘기계가 꾸는 꿈’, ‘생성 예술’ 두 가지 키워드인데, ‘기계가 꾸는 꿈
’이라는 일종의 레토릭rhetoric(수사학)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포괄적으로 포용할려고 했던, 고민을 했던 흔적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생성 예술이라는 포인트가 상당히 적합한 것이라 생각해요. 기계와 창조, 이런 부분을 생각했을때, 과학과 예술이 만나 서로 새로운 장을 열어가는 지점으로서 생성예술만큼, 그 뒤에 숨겨져있는 인공 생명 만큼 비전이 뚜렷한 곳이 없다고 생각해요. 이 주제를 놓고 들어가 게되면 많은 문제와 만나게 됩니다. 우선은 그 자체가 우선 진화론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고 또 생명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와 예술적인 인스플레이션, 그 다음에 알고리즘, 컴퓨터의 어떤 그 기능, 그리고 가상생명과 실제 생명과의 대비 때문에 다시 생명에 대한 문제가 다시 또 부각될 것이고 철학과 종교의 문제까지 건드리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존재에 대한 종교적 신념에까지 사실은 침투하게 되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논의의 씨앗을 뿌리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 생각 같아서는 좀 더 이런 기회가 많이 잡았으면 좋겠고 또는 국내의 다른 학회들과도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갈 수 있으면 좋겠고 또는 학진등의 연구 프로젝트로서도 충분히 기획해서 계속 이런 얘기가 반복되고 지속될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이번 심포지움에서 발표해주신 ‘가시화를 통한 예술’이었습니다. 시간이 촉박했던 관계로 엑기스를 좀 더 들어보고 싶구요. 그리고 지금 현재 가시화 수단으로서 가장 영향력있게 행사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비디오 아트를 주로 하셨지만, 선생님의 연구라던지 그런 연장선에서 어떻게 닿아있는지 궁금합니다.


비쥬얼리제이션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를 눈에 보이게끔 만드는 거거든요.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은 가시화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카메라로 열심히 담으면 되는 거 같습니다. 눈에 안보이는게 뭐냐면은 내일 날씨라던가, 길게 말하면 진화라던가, 사실은 분명히 있었던 사실이라고 생각되지만은 눈에 보이지 않는게 바로 그런 컨셉들이거든요. 그 부분들을 눈에 보이게끔 해주는게 가시화인데, 가장 결정적으로 공헌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CG입니다. 데이터를 집어넣어 시각화시키는 거죠. 태풍 등 언뜻 보면 사실 한 지점에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 하나의 큰 시각적 모델로 된다는 거, 그리고 형태가 생겨나고 자라나는 것, 태아가 자궁속에서 세포 분열하면서 자라나는 것 그 다음에 사람이 늙어가는 것 또 어떤 과정에 의해서 변화해나가는 것 형태가 부식된다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다 100년 200년 옆에서 지켜보면 알 수 있지만은 사실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런걸 눈에 보이게끔 해주는 거죠. 사실은 예술의 기본기능이 그점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과학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래서 예술이 하나의 새로운 메시지가 될 수 있었다고 보구요. 

그런데 가시화가 되고 나면은 뭐가 좋아지느냐. 우선 크게 봤을 때, 자연과 우주의 미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재가 무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또 한가지는 예를 들면 내 주변에 박테리아가 몇 마리가 있는지 또는 내가 지금 돈 오천원을 들고서 나가면은 내 건강상태에서 가장 맞는 음식점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되는지, 그걸 데이터로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거 그런거 아니겠냐는거죠. 이런 실용적인 면에서부터 이해, 자연적인 이해에 이르기까지 사실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가시화가 중요한게 아닌가 하는 거고. 그런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가 가장 실용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청각현실, 확장현실에 대한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거야말로 우리 실생활과 전 공간을 연결시켜가지고 정말 실생활을 유용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거든요. 저는 최근에 정보공간, 장소, 장소의 부활, 이런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은, 서울 시청앞에 가가지고 여기가 예전에 6.25사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곳이다. 또는 6.29사태 때 어떤 일이 벌어졌던 곳이다. 독립 맞을 때는 어떤 일이 있었다. 그런걸 갖다가 사람마다 다른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이조 시대 땐 다른 기억이 있었겠죠. 하지만 장소가 가지고 있는 그 기억이 사람마다 다르고, 역사마다 다르고, 청나라 사람한테 비해서 본다면 청나라 사람들은 그 사람들도 옛날에 우리나라에, 한양에 쳐들어 왔던 적이 있었지 않습니까. 그 때 봤던 한양의 모습, 자기들이 어땠는지, 아마 자기들도 기억하고 있을텐데. 하나의 스폿에 대한 다른 각각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기억들을 가지고 다시 또 재구성해볼 수 있는게 아닌가. 예를 들어서 내가 시청앞에 가서 6.25사태의 이야기를 듣고 싶으면 6.25때 광경을 직접 볼 수 있고, 6.29때를 직접 볼 수 있고, 작년 광우병 사건 때 있었던 그 현장에 직접 가보고싶다면 직접 가볼 수 있게끔. 그러니까 실제로는 사라져버리고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기억에 지나지 않지만 그 기억과 장소를 만나게 해 줄 수 있는 또는 기억뿐 아니라 기록과 정보, 부속된 데이터와 여기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맛있는 갈 수 있는 자장면집이 어디라는거 또는 저쪽에서 초등학교 동창생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다던가, 현재. 이런 정보를 나한테 직접 전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일종의, 미래의 네비게이션은 그런 방식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아마 가장 유효한 가시화의 수단은 그게 아닌가 생각했고, 이거는 산업쪽으로도 상당히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거의, 제 생각에는 이런 일은 구글에서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완벽하게 지구를 하나의 전국권으로 묶는거죠. 한 45억년 전부터 지금까지 지구 전체를 갖다가 데이터를 갖다 GPS의 시대로 완전히 다 묶어버리는 그런 방식으로 아마 발전하기 않을까, 무슨 정보가 필요하십니까? 물어보고 바로 가시화해주고하는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 선생님이 연구하시는 연장선상도 그런 부분과 맞닿아 있으리라는 말씀이신거죠?


제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관심은 듀얼리얼리티라는 것이예요. 이중의 리얼리티죠. 예술작품이 원래 이중의 리얼리티(메시지)를 가지고 있죠. 예를 들면 피카소가 자전거 안장과 핸들을 붙여놓고 소라고 했잖아요. 뿔이고 머리고요. 언뜻 봤을때 그건 자전거 안장과 핸들인데, 다르게보면 그건 소처럼 보이잖아요. 두가지로 읽힐 수 있다는거죠. 그게 바로 듀얼리얼리티라는 건데, 예술작품은 사실 이 듀얼리얼리티를 잊어먹으면은 재미없습니다. 그냥 이발소 그림이 되버리죠. 눈에 빤히 보이는, 메시지가 뻔한, 그것밖에 안되는거죠. 항상 이중의 코드가 같이 서로 오버랩되어 있으면서 예술작품으로서의 어떤 그 깊이를 가지게 되는 건데, 그래서 작품을 하다보면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이라는 것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의 만남이에요. 그러니까 비디오인스톨레이션이 만들어져있는 그 현실 공간은 영상 속의 공간과 만나게 되있고, 영상 속의 공간은 이 현실 공간과 만나야지 작품으로서 읽힐 수 있는 문맥이 되는 거든요.  제가 처음으로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활동할 때 여기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당연히 듀얼리얼리티라고 하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됐고, 나중에 합성 리얼리티, 두 개의 세계가 같이 만나는 거 이런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깐 저는 대부분 완벽하게 가상공간에만 빠지진 않은거죠. 제 자신의 출발점도 그렇고. 그래서 결국 가상공간이 있을 때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이 공간과의 상관관계는 무어냐, 이 부분을 늘 생각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현실과 가상의 합성, 또 경계, 이 부분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까 그 두 개가 만나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장소라는 특성이거든요. 장소에 대한 기억이 없는 곳은 단순히 하나의 공간일 뿐인데, 그 공간에 사람들의 의미가 부여되고, 경험이 축적되고, 기억이 말 그대로 서로가 공유하는 장소가 되는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거죠.

 

-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보면 시각화에 대한, 시각화를 기준으로 해서 활자를 발명으로 인해서 시각이라는 것이 다른 감각에 비해서 굉장히 비중이 많이 두어졌다라는 어떻게 보면 비판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시각화와 어떤 점이 다른지 또는 같은지의 부분이 궁금합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의 80프로가 시각이라고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몇프로인지 정확하게 모르시겠지만 아마도 절대적인 양이 시각일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일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사람은 개나 다른 동물과 달리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습니까. 아메바 이런 동물은 더듬이에 아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개는 냄새에 굉장히 많이 의존하는데, 사람은 시각에 의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똑같이 생긴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음식같은 것을 보면 진짜 먹고 싶어지는 건데, 개라면 쳐다보지도 않겠죠. 냄새가 아예 아니니까 일단. 한데, 사람은 끌리게 되는거죠. 마네킹처럼 이쁘게 생긴 여자한테도 아마 그렇게 될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되는데. 지금 특히 미디어쪽, 미디어의 발달에서 본다면은 19세기이후부터 지금까지 미디어가 시각을 중심으로 발달했다는 것. 그건 분명한 사실이예요. 어떤 면에서 그건 기형적인 발달이라고 생각 합니다. 다른 방법도 굉장히 많은데 왜 자꾸 시각만으로만 발달해왔는가 그에 비하면 다른 감각들은 많이 떨어져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 추후 다른 감각과의 조화도 같이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통감각이라고 하나요. 예전에는 사실 인간 내부의 어느 한 부분에서 시각과 청각과 촉각과 미각등이 하나의 그 어떤 감각으로 통일되는 곳이 있다. 만나는 곳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죠.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은 오디오 트랙이 있고 비디오 트랙이 있고. 두 개의 트랙밖에 없잖아요. 여기다가 감각 트랙을 하나씩 더 집어넣자. 그렇게 하면 되는데, (그런데) 사실 영화나 이런걸 보면은 오디오트랙과 비디오트랙은 각각 그냥 평행하는 트랙이잖아요. 이 두 개의 트랙이 어디서 만나는 지점은 없거든요. 그러면은 우리 뇌도 그런게 아니겠는가. 냄새를 다루는 감관은 그냥 냄새를 다루는 감관으로 끝나고, 맛은 맛대로, 시각은 시각대로, 그 끝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옛날 어떤 사람들은 뇌 속에 송과선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어 그 지점에서는 모든 오감이 만난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죠.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이부분에 관해서는요, 지식이 아직까지 얕습니다. 우리가 오감이라고 하는 것조차도 사실은 그렇게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촉각 그러는데 촉각을 조금 더 자세히 하면 체성감각라고 해야하고요. 촉각 속에서 위가 아프다던가 눌리는 감각이라던가 어지럽다던가 이런 감각은 부르는 이름이 없거든요. 그런 것들은 감각에 대한 분류 체계조차도 아직까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어떻게 보면은 시각을 제외한 감각에 대해서는 공부가 굉장히 덜 되어 있다고 봐야지요. 그런 점은 약간 앞으로 더 많이 해야될 거라고 생각되는데, 어쨌든 지금은 시각부분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사람이 버는 시대죠. 그렇다보니까 자꾸 이쪽으로 가는거죠. 



- 교육으로 포커스를 좀 옯겨서, 현재 가르치고 계시는 학생들 대부분이 순수회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인데 디지털적인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는데 있어서 장벽 같은 것은 없는지요?


네,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하죠. 장벽이.. 저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있다. 없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요. 또한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다르다고 생각해요.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옛날에는 컴퓨터라 그러면 굉장히 어려운, 별난 인간들만 다루는 어떤 기계로 생각을 하고 있었죠. 제가 어렸을 때 봤던 만화들을 보면은 컴퓨터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아인슈타인처럼 생긴 사람이예요. 아니면은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다던가. 그리고 말풍선 안에는 어려운 수학 기호가 착착착 넘어가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 컴퓨터를 다루는 인간이었죠.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의 지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인터넷은 굉장히 쉬워졌고요, 사람하고 굉장히 가깝게끔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렵다고 생각하면은, 어쩔 도리가 없는건데. 그래도 제가 3세대, 2세대, 휴대폰을 쓰다가 4세대 휴대폰을 쓰면은 금방 또 인터페이스를 헷갈리고 하거든요. 차를 한 대 새로 사도 또 뭘 몰라가지고 그러고요. 그런 그 기계에 대한 모험성이 점점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어듭니다. 하지만 젊은 학생들이 그러는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또 한가지는, 이제 실제로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단순히 마우스만 클릭클릭해가지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고, C언어로 프로그래밍을 해야되는 웹에 대해서는 또 다른 내용이죠. 그거는 좀 다른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기계 미술에 대한 선배들의 생각을 전염받는다고 해야하나요. 그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유럽이든 미국이든 있었던 일이지만 세계적으로 봤을 때, 1차 세계대전에서 2차 대전을 경계로 해서 60년대 이전까지 만들어졌던 하나의 컨셉이 뭐냐면은 ‘인간에 대항하는 기계’라고 하는 컨셉이예요. 기계는 비인간적인 거예요. 인간성을 말살하는 어떤 존재죠. 기계를 다루고 있는 사람일수록 비인간적인 사람, 기계를 잘 못 다루는 사람일수록 인간적인 사람이예요. 이런 이데올로기라고 해야할까. 이게 태어난거에요. 그 이전에는 좀 더 멀리가자면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에서도 나옵니다, 프랑켄슈타인이 처음 나온게 1823년이예요. 그렇죠. 19세기 사람들부터 벌써 그런 얘기를 하고있었지만은 특히 1차 대전 이후에 모던타임즈 영화라던가 또는 멋진 신세계라던가 그런 소설들을 통해가지고 기계 문명에 대한 어떤 그런, 안티 기계, 안티 매커니즘이 생겨난거죠. 이것이 사실은 특히 우리나라같이 프랑스와 미국의, 특히 뉴욕의 추상표현주의, 그 라인으로 이어지는 미술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배척되어져야하는 사조로서 교육되고 전수되어져왔던 것이기 때문에 이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게 아닌가. 쓸데없는 거부감을 느낀다는거죠. 약간 손해라고 생각하고요. 이게 실제로 어떤 상황까지 벌어졌냐 그러면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새로운 컴퓨터 기계에 익숙한 나라가 없어요. 80년대에 이미 갤러그를 통해서 이미 컴퓨터 게임을 갖다가 아주 어릴때 부터 막 익숙해졌던 사람이 결국 입만 뗐다 그러면 서구문화, 서구문화 그러거든요. 오히려 서구 사람들보다 우리가 훨씬 더 기계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계적인 환경 속에서 어릴때부터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자기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생각에 참 아이러니하다. 이건 자기 생각이 아니고 이건 위에서부터 물려받은 생각이다. 이거야말로 세뇌교육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현재 학문간융합교육에 대해 굉장히 붐이 일어나고 각 학교에서도 이런 학과를 설치하는 부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만나면서 어떤 방향으로 진행이 될 건지, 어떻게 나가는 방향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전에는 interdisciplinary, 학제간 연구, 교육 이런 것들이 먼저 나왔고, 최근에 본격적으로 통섭이란 말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저는 실질적으로, 어떤 학제간 연구에서 필요한 것은 자기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학제.. 인터네셔널이라고 하는데, 네셔널리즘이 있어야 그 다음 인터네셔널이 가능한 것이거든요. 자기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우리 통섭, 학제 연구하자 그러면은 넌 뭐 갖고 올껀데, 내놓을게 있어야지 뭘 같이 하던가 말던가 하지. 그러니까 아무것도 줄 게 없는 사람들이 열명이 모여가지고 앉아가지고 떠들어봐야 아무것도 나오는거 없는거죠. 그런 점은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되겠다. 그래서 단지 이런 점은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통섭 쪽은 제 생각에 대학원 레벨에서 해야하는게 아닌가. 우선 학부생한테 뭔가 자기의 전공 능력을 가지게끔하고 거기서부터 발을 딛고서 다른 쪽으로 다시 두 번째 걸음을 걷게끔 해야지. 뭐 그냥 뺑뺑이 돌다보면은 자기께 없으면은 결국은 아무것도 안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고요. 또 한가지는, 바우하우스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요. 한 번 이런 창작과 관련된 기술의 체계가 혼란스러워진 적이 한 번 있었어요 역사적으로. 그 때가 바로 바우하우스 이전 시대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막 나오면서 이전에 도제 시스템에 의해가지고 건축이나 공예나 이런 것들이 다 유지가 되던 시대에 철, 유리, 콘크리트 이런 것들이 팍팍 나오면서 새로운 소재가 나오니까 도대체, 디자인의 세계가 확 흩어져버리는 거거든요. 이 때 하나의 공통적인 문법으로 정리를 해가지고 교육을 통일한 것이 바우하우스인데, 바우하우스에서 제가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베이지 코스라고 하는 거예요. 어느 분야의 예술에 종사하던 간에 먼저 이것만 하면은 그 다음에는 내가 공예를 가든 시각디자인을 가든 어디로 가든 다 가능하다라고 하는 이 베이직 코스위에다 자기 전공을 쌓아가게끔 하는 체계가 20세기의 미술 대학의 체계가 된거죠. 그래서 비로소 대학에서도 미술 교육이 가능하다는 게 되었죠. 이게 아니라면은 지금도 그래요. 어떤 지역에서는 도대체 미술을 왜 대학에서 가르쳐야되느냐. 프랑스도 그렇잖습니까. 에꼴드보자르는 미술대학이 아니지 않습니까. 미술은 대학에서 가르칠만한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거고. 미국은 미술 대학에서 가리치는거다. 미국에 있는 대학들은 다 미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프랑스는 다 전문학교잖아요. 그런데 약간 컨셉이 다르다고는 생각을 하는데, 어쨌든 바우하우스에서 생각한 것은, 기초 과정이 있고 기초 과정 위에 전공 과정을 쌓아가지고 그걸로써 모든 조형교육이 가능하다는건데. 지금 이게 조금 문제가 생겼어요. 다시 또 새로운 기법이 팍팍 나오면서 바우하우스 이전 시대로 다시 돌아간거예요. 자, 이제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이 무어냐하면은, 그러면은 이런 넓어지고 경계를 알 수 없고, 오늘은 이 디자인을 하던 사람이 내일은 갑자기 패션디자인도 하고 패션디자인을 하던 사람이 자동차 디자인도 해야되는  이런 통섭적인 상황속에서 이 사람들을 갖다가 공통적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바우하우스 식의 베이직 코스가 가능한가. 또 한가지는 만약에 가능하다면, 그게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되는 시기가 온 거라고 생각되고요. 그래서 지금 제 생각에는 당장은 아마 학제적인 방식으로 접근을 해야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학생 누구한테나 너의 전공을 일단 가다듬어라라고 충고를 합니다. 아무리 학제적인 시대라 하더라도 자기가 잘하는 전공 플레이가 없으면은 어디 나가도 써 줄 사람이 없고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전공을 확실하게 일단 가다듬고 그 다음에 거기서 발을 딛고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고 이렇게 충고를 많이 하지만, 결국은 나중이 되면은 르네상스 시대의 만능인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같은 그런 사람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좀 듭니다. 그런데 그거는 아직은 아닌거 같아요. 한가지 뭐냐면은, 르네상스 시대하고는 많이 달라졌지만은 우선은 지금 인간의 수명도 상당히 길어졌지만은 전체적으로 이 통섭적인 아주 전공능력이 없는 만능인같은 그런 일을 하기에 필요한 교양과 경험을 갖추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옛날에는 뭐, 다빈치 같은 경우에는 20대 초반에 이미 이름을 굉장히 날렸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태어났다면은, 그 머리를 가지고도 한 30살까지는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부해야할게 너무 많아요. 그래서 아마도 인간의 수명도 길어졌지만은 그만큼 교육에 필요한 시간도 많이 들고 그만큼 폭넓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공부도 시간도 많이 들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마지막으로, 학교외에 벗어나서 실제로 과학과 예술, 또 다른 영역이 함께 나아갈 방향들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저는 일단 과학과 예술과 산업과 인문학과 철학, 모든 분야들이 지금 미디어 문화 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미디어 문화가 추세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뚫고 나가는데 이게 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술도 마찬가지고, 과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예술과 과학과의 분야에서 본다면 예술도 진화해 나가야 되고, 과학도 진화해 나가야 되는데, 하나의 그 독립된 영역에서는 진화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거죠. 그러니까 서로 맹렬한 인터렉션을 하면서 공진화를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공진화한다는거죠. 그리고 또 한가지는 거기서 정반합의 원리에 의해가지고 새로운 어떤 하나의 영역이 태어날 것이다. 그거는 지금으로서는 감히 예상할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되고요. 자꾸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속도, 인터렉션의 속도 또는 새로운 피드백의 속도가 빨라진다면은 조만간에 뭔가 폭발하는 모습을 보게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도 있습니다만은, 결국 사람과 과학, 예술과 과학이 해내야하는게 뭐냐면은 인간 해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지금도 우리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법제도라던가, 자연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했지만은 인간, 굉장히 해방되지 않았거든요 아직까지, 굉장히 많이. 그래서 아직도 제도라던가 관습이라던가 사회적인 사상이나 이런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이 자기를 보는 모습도 그렇고. 그래서 결국 지식의 양을 증대시키고, 또 우리가 보지못했던 세계를 자꾸 보게 함으로써, 가시화시킴으로써 우리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이해를 아마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결국 보고 이해하는데 해방의 지름길이니까. 거기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생각이듭니다. 이 점은 르네상스 시대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또 한가지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결국은 사람을 위해 발달해야죠. 사람을 가장 한가운데 놓고서 생각해야되는건 당연한거기 때문에 이 점은 변함없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 긴 시간동안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취재 : KoIAN 서지혜, 편집 : KoIAN 박신민)